Egloos | Log-in


태그 : 교육감선거

어제나 그 전날에 투표하라고 올리지 왜 다 끝나고 난리인지;

**자식있는 분들에게

인문계 고등학교 해지고 나서 몇시간 더 야자하고 밤-새벽에 학원, 과외 하느니
차라리 중고등학생 몇명 모아서 고학력 백수들을 파트타이머로 고용하고 홈스쿨링 시키세요.
과외비도 아닌 학원비가 30이라 치고 다섯 명만 모으면 150 이네요.
반나절이나 한나절 서울대생이나 대학원생도 고용하겠네요.
남은 시간은 박물관 미술관 극장 도서관 보내고 토론도 시키고 집안이든 밖이든 일도 하거나 참관하게 하고.
애들 몸도 편해 마음도 편해 성적도 오르고 성격도 좋아질 겁니다.
 
난 어제 호라리 뽑았는데 주경복 후보가 8하우스에서 컴버스트당하고(7하우스에 룰러쉽 달-민심?이 있긴 했으나) 그 놈이 펄목성인데 1하우스 로드로 1하우스에 있길래 호라리 보는 법 몰라도 그때 우리편 졌네 싶어서 그러려니 하고 있었다.
통근시간 1시간 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니 아침에는 당연히 힘들고 저녁에야 할까 말까 한데 오후 8시까지 했잖아. 그것도 몇백개 교회에서 -_-; 자식없는 자신이 투표할 자격이 있을까 확신이 없어서 투표 안 한 사람도 있을 거고 홍보 기간도 짧았고 임기 1-2년인걸. 쥐들이 강물을 말려라. (특히 자사고 사립 학원에 교사들 인건비+복지비용 세금으로 해마다 억단위로 주는 거다. 원장만 돈 '더' 버는거 =_=;)
어차피 한창 일하고 일 배울 때 사람들이 삭막하고 일어서지도 눕지도 움직이지도 못하는 곳에 갇혀서 종소리대로 이동하고 교사의 폭언과 교과서 읽는 소리에 노출되어 밋밋한 뇌를 만든다는 게 끔찍하다. 일자리를 위해서라니 어차피 취직도 안 되는걸 -_-; 연세대 영문학과 상위 성적으로 졸업해서 (얼굴도 꽤 예뻤다. 성격도 좋고) 취직 안 되었던게 2005년인가 수능 다시 치고 의대 간다던데 그거 졸업할 때 되어도 의사 돈번다는 보장있나 한 십년 걸릴텐데 -_-;; 훨씬 점수 낮았던 좀 더 나이 많은 사람은 울며겨자먹기로 치대밖에 못 가서 친척들끼리라기보단 우리 엄마가 말이 많았는데 결과적으로 돈 버니 부러워하고 -_-;;; (그때 몇년만에 엄마 말하는거 듣고 엄마가 치대 간 줄 알았다) 
하던 교육감이 기세등등하게 미친 짓 더해서 사람들이 그때 대학생이랑 지금 대학생이랑 자릿수부터가 다른데 다 예전같은 일자리를 줄거라는 집단환상 때문에 공교육에 애들 버리고 사교육비에 돈 붓는 것 좀 집어치우고 사학마피아에게 등록금 퍼주고 졸업시켜도 취직 안 되는 현실을 알고 그냥 어릴때 행복하게 해줬으면 좋겠다. -_-; 물론 저번달에 얘기했던 버스기사 아저씨도 자식들 중국에 초등학교때부터 유학보낸다는데 -_-; 여기 학원비면 다른 나라 좋은 사립학교 다니게 할 수 있는 것도 맞지만 한국에 대안 학교나 도시도 만들 수 있다구요. 대안학교도 몇십만원 기숙사비+수업료 같은 거 때문에 중산층이라고 내부비판 있는 거 같은데 솔직히 지겨웠다. 식당+공장 뛰어서 애들 수십만원짜리 과외에 학원 보내는 게 아줌마들 10년째 해왔는데 지금이 막차고 학원 재벌이나 사학마피아들이나 벌만큼 벌었다. 앞으로 한 5년 더 해먹겠지.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학원비 낼 돈도 없어질 거다. -_-; 나중에 돈벌지도 모른다는 희망때문에 자식들을 노예로 착취하라고 돈까지 얹어서 막 내줘 -_-; 얹어주는 돈만 보고 달려드는 선생,원장,교수,학장,공무원들이 있다는 걸 바보들이라 모르나.
좀 나은 노예장이 생기면 깨닫는게 느려지겠지만 그래도 애들 숨 좀 쉬었겠지. 몇십만명의 지난 십년같은 속도로 악화될 이 년. 내가 중학생이었을 때 비치고 달라붙고 끈적한 합성섬유 교복을 입고 팔다리가 구겨진 채로 밖의 사람들은 이렇게 힘든거 모르냐고 무슨 낯짝으로 다들 사냐고 인권 타령하는 사람들도 다 싫고 나갈 수 있으면 하루종일 걷고 싶었다. 나와서는 좀 살 것 같으면 애들 생각나서 아무 것도 안하는 내가 한심해서 미안했던 적도 몇년 있었고.
2015년에 졸업해서도 1990년대 졸업생이 얻었던 일자리 얻을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싶은 환상을 믿는 게 정신의 즐거움일 수도 있지만 늙은 몸이랑 커버린 애는.

주민소환추진국민모임
http://www.ckp.kr  창조한국당 홈페이지

by 다비 | 2008/07/31 12:53 | 탄핵될때까지촛불행진 | 트랙백 | 덧글(2)

세상에. 폭력진압하기 싫어서 일부러 다치려했단다.

 이길준 : 진압복을 입으면 어지간해서는 맞아도 아프지 않다. 소주병이나 시위대의 폭력은 대개 진압이 끝나고 선임들이 모여서 담배 하나 피우면서 무용담처럼 얘기하는 꺼리가 될 뿐이다. '이런 경험도 한 번쯤 필요한 것 아니냐', '나는 돌도 맞았다'라는 식으로 얘기하면서.
 전·의경이 제일 많이 다친 건 물대포 때문이었다. 저도 굉장히 많이 맞았다. 시위대한테 맞아서 다쳤다기 보다 주변에서 밀어서 다치는 경우가 많다. 주변 부대원들 중에서는 별로 다친 사람을 못 봤다. 저희 부대 60명 중. 촛불 집회 동안 다친 사람은 없다.
Afterservice

프레시안 :
시위 진압을 나가면서 부대 분위기가 바뀌진 않았나.
  
이길준 : 지휘관들이 가장 강조하는 건 사실 구타 및 가혹 행위 금지이지만 형식적일 뿐이고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촛불 집회 이후 6~7월 두 달간 분위기가 굉장히 험악해졌다. 애들을 긴장시키고, 군기를 잡는다는 명목이었다.
  의경은 전통적으로 가혹 행위가 심하다. 사건이 터지면 1년 간 평온하다가 다시 사건이 터지는 식이다. 시위 현장에 나가서 기동대 버스 안에서도 많이 그랬다. 얼차려를 받기도 하지만 눈에 띌 수 있는 건 많이 안 시킨다. 의자에 몸을 붙이지 않고 앉은 자세로 서 있다거나. 이런 건 지휘관이 지나가면 앉았다가 다시 할 수 있으니까.
  군기를 잡는다는 목적이 가장 크다. 조그만한 꼬투리라도 잡아서 벌을 주는 것이다. 나갔을 때 느렸다거나, 나간 후에 목소리가 작았다거나, 살기등등한 모습을 못 보였다거나.
  촛불 집회가 계속될 수록 구타 행위는 점점 심해졌다. 7월에는 매일 맞았다. 특박 나오기 며칠 전부터 그만 때리겠다고 하면서 잠깐 분위기가 좋아지긴 했지만.

이길준 : 일단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괴로워하고 있는 상태였으니까 시위대와 눈만 마주쳐도 힘들었다. 피켓 들고 지나가는 것만 봐도 힘들었다. 우리를 보고 야유를 굉장히 많이 했는데, 그걸 보면 남들과 다른 의미로 많이 아팠다. 지나가면서 '항명하라'고 얘기하라는 사람들도 굉장히 많았다. 나오기 전까지는 굉장히 순응하면서 살았다. 그런 것을 비난받을 수 있지만 감수해야 할 것이다.
  시위 현장에서 일단 많이 힘들었다. 헬멧을 쓰고 있을 때가 많았는데, 안 보이게 많이 울기도 했다. 내가 그 자리에서 옷 입은 채로 가서 선언을 해버리고 싶기도 했다.
http://pressian.com/Scripts/section/article.asp?article_num=60080725133732

6월 내내 집회를 막는 것에 동원되었고 계속 철야였다. 몸이 힘든 것은 참을 수 있지만 내가 하고 있는 무의미한 행동을 견딜 수 없었다.
나와 똑같은 시민들을 향해서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 얼마나 정당성이 없는지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시위대가 피켓만 들고 내 방패 앞을 지나가도 힘들었다. 지나가면서 경찰들에게 야유를 던지는 사람들이나 항명하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가슴을 후벼 팠다. 헬멧을 쓰고 있을 때 안보이게 울기도 했다.

그런 상황에서 처음에는 도피를 시도했었다. 다치면 시위진압에 나가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다리를 부러뜨리려고도 했다. 다른 부서로 옮길 수 없을까 알아보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다 잘 안되었고, 그렇게 보낸 6월은 너무나 길고 힘들었다. 다행히 6월에는 직접 시위대 해산이나 진압이 아닌 길목을 막고 있는 역할이어서 버틸 수 있었던 거 같다.

7월로 넘어가면서부터 도피가 아닌 저항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늘 타협만 하고 살아왔다. 하지만 이번만은 저항을 하고 싶었다. 만약 이번에도 타협을 한다면 앞으로 너무 부끄러울 것 같았다. 당당하게 살고 싶은 좋은 '이기심' 같은 것을 느꼈다. 이번 촛불집회는 스물을 갓 넘은 청년들이 얼마든지 권력의 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런 이상 그것을 유지하는 일에 복무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인터뷰] 이길준 의경, 촛불진압 항의 복귀 거부

사실 매일 전경들하고 얘기해보면 폭력진압을 잘 모른다. 촛불 티셔츠 입고 자전거 타고 인도로 지나가는 여자아이 전경이 때리고 협박해서 전경차에 집어넣었다던지 100명이서 촛불 시위하고 있는데 80여명을 봉고차에 넣어서 유치장으로 끌고 가고 그 과정에 시민이 중상을 입었다던지 전경이 아저씨 손을 깨물어서 손가락이 잘렸다던지 전경으로 복무하는 자식이 걱정되서 보러 나간 어머니를 다른 전경이 폭행했다던지 12살짜리 애를 닭장차에 강제 연행했다던지 이런 얘기 하면 법적 근거없이 폭력진압해본 경험 없는 전경들은 신문도 못 보니까 당연한 거지만 정말요? 하고 놀란다. 대치때 전경들에게 이야기를 해야한다.
'촛불 진압' 경찰 포상..."5·18때 훈장 나눠갖는 꼴"

주민소환추진국민모임
(낮에 거주 지역에서 전단지를 나눠주는 등 미리 하고 있는게 있으니 다들 가입해두시라)
교육감 선거 투표장소
http://marilin.egloos.com/1990781 (이거 28일쯤에 이오공감 올라가면 좋겠다. 이오공감 최초투표권이 없어서)

by 다비 | 2008/07/26 11:48 | 탄핵될때까지촛불행진 | 트랙백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