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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11 “역대 민영화 모두 실패작” 1차는 경제집중 시발 혹평
2008/07/16 30년에 0이 하나 빠졌나보다. 7년도 적구만 죽을 때 다 됐다고 봐줬더니. [2]
# by | 2008/08/20 15:59 | 정치 | 트랙백
1968년부터 73년까지 진행된 1차 공기업 민영화는 대한통운, 대한항공, 인천중공업 등 제조·운수·항공 분야의 11개 공기업이 대상이었다. 주로 주식매각과 시중은행 현물출자 방식으로 이뤄졌는데 민영화 이전에 대부분 적자에서 흑자로 전환돼 그나마 성공한 민영화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경제력 집중의 시발점이 됐다는 혹평도 나온다. 80년부터 시작된 2차 공기업 민영화는 금융자율화라는 목표 아래 한일·제일·신탁·조흥은행 등 4개 시중은행을 중심으로 추진됐다. 공개 경쟁입찰 방식으로 민영화를 추진하되 대주주의 소유지분 한도를 5%를 설정하는 등 당시에는 획기적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정부가 은행 경영에 계속 간섭하면서 민영화 작업은 성공보다는 실패에 가까웠다.
87년부터 시작된 3차 민영화는 한국전력, 국민은행, 한국통신, 포항제철 등 우량 공기업을 대상으로 국민주 방식의 민영화를 추진했지만 주식이 대량 공급되면서 증권시장이 침체되는 결과를 낳았다. 김영삼 정부는 ‘작은정부’를 표방하면서 4차 공기업 민영화 작업에 착수했다. 58개 공기업 매각, 11개 기관 통·폐합을 목표로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22개 공기업의 경영권 이양과 지분매각에 그쳤다.
김대중 정부 때 단행된 5차 민영화는 ‘공기업 민영화 추진위원회’를 별도로 조직해 11개 공기업 민영화와 77개 자회사 매각이 추진됐다. 하지만 ‘헐값 매각’ 논란이 제기되면서 공기업 민영화 작업은 정권 후반기 급격하게 추진력을 상실했고, 한국전력·가스공사·지역난방공사 등은 부분 민영화에 그쳤다.
배국환 기획재정부 차관은 “5차 민영화 당시 상황이 급하기는 했지만 일부 공기업을 너무 싸게 팔았다는 지적이 정부 내에서도 제기됐다”고 회고했다. 김동열 현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기존 5차례의 민영화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라며 “대기업에 대한 특혜 시비, 민영화에 따른 고용 불안, 국내 자금 부족, 정책의 일관성 부족 등과 같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808111800505&code=920401
차에 치여서 일주일정도 모니터에 못 앉다가 그저께 해보니 별로.
낙하산 인사로 정당성 퇴색…진정한 개혁 의문
혈세로 살린 기업 재벌에 매각하나
주민소환추진국민모임
국민주권수호시민연대 http://gobada.co.kr/ (전 운하반대시민연합)
http://www.ckp.kr 창조한국당 홈페이지
# by | 2008/08/11 19:00 | 정치 | 트랙백
삼성판결은 재벌범죄에 대해 면죄부만 발행한 재판
서울 중앙지법에서 열린 삼성그룹 관련 재판결과는 힘센 재벌에게 면죄부만 발행한 것으로 법의 준엄함과 지엄함이 실종된 판결이다.
이번 판결은 삼성특검이 부실수사시비에 휘말리면서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긴 했다. 그러나 김용철 변호사 본인이 행했다고 주장한 범죄혐의조차 제대로 수사하지도 않고 법원도 이를 외면함으로써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대부분의 혐의를 벗겨주기 위한 한낱 사법 쇼에 지나지 않은 결과가 되었다.
특히 수천 개에 달한다는 차명계좌를 제대로 추적하지 않고, 삼성로비의 대상이 된 검사들에 대한 조사도 거의 이뤄지지 않아 삼성특검의 부실한 수사가 오늘과 같은 결과를 빚을 것이란 예상은 누구나 할 수밖에 없었다.
‘태산명동’에 ‘서일필’이란 바로 이런 상황을 두고 한 말이다. 전국을 들끓게 한 삼성특검이 고작 이건희 회장 부자의 무죄와 수조원에 달하는 비자금에 대해 국가가 합법적으로 인정해주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특검과 사법부는 이 땅에 사법정의가 살아있는지 의심하는 국민에게 오늘의 재판결과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 납득할만한 답변을 내놓아야 한다.
창조한국당 대변인 김석수
# by | 2008/07/16 16:58 | 정치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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