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6월 11일
아이디 바꿀까
다비는 많은비와 다-비(이거 다아 빗방울)라는 뜻인 건데 성명학에서 ㅂ이 들어간게 좋을 거 같데서 반년전에 잠깐 생각하고 만든 거다. 7개월 됐나? 근데 나보다 훨씬 일찍 이걸 쓰고 있던 사람이 있다는 걸 알고 계속 나도밤나무 쓸거면 바꿔야할 거 같다. 문국현대통령이 됐다면, (요정말고 사람 대통령 좀 ㅠㅠ) 창조한국당, 민노당, 진보신당이 의석 과반수를 넘었다면 다 폐기했을 거다. 난 지금 그대로고 사람들이 다 나보다 나은 사람이면 좋겠다. 중학교때 100m 달리기 할때랑 교복 입은 애들이 나보다 키 클때 말고는 열등감이란 걸 느껴본 적이 없다. 그냥 다들 문국현 같고 김연아 같아서 문국현 같은 유능하고 봉사하는 사람들에게 딸려가고 지나가는 애들 얼굴이 다 김연아처럼 이마도 볼록하고 미간도 맑고 안색이 밝고 기품 있고 보기만 해도 기분이 가벼워졌으면 좋겠다.
블로그도 문장으로 설득할 생각 전혀 없고 그냥 기사만 봐서, 아 운하 파겠다 그러는 사람은 모래랑 세금이랑 국토 이용권이랑 수질 안전이랑 다 건설회사에 헐값으로 팔아넘기려는 매국노고 금치산자 판정내려야겠구나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었으면 했고 공기업 민영화도 그렇고 내가 퍼올리는 게 좀 귀찮지만 빗방울 하나라고 생각했다. 표면장력으로 버티고 있는 물잔이 넘칠 수 있는 물방울.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 집에 가기 싫어서 수업 마치면 교무실에서 열쇠 챙겨 빈교실 아무데나 들어가 사물함 앞에 깔아놓는 퍼즐모양 스펀지 방석에 앉아 해가 질때까지 학급문고 책들을 읽곤 했다. 불을 켜면 복도나 건물 밖에서 누가 볼 수 있으니까. 중학생때는 피부에 들러붙는 여름에 땀나고 덥고 겨울에 추운 데다가 미끌거리면서도 까끌까끌한 신비한 합성섬유로 만든 교복을 입고 저녁까지 엎드려 있으면서 가끔 시비거는 선생들(자기들 기분 나쁠 때 말고는 깨우는 선생들이 적었다.) 있으면 고개 들어 주고 교과서는 안 먹고 가방에 넣어둔 우유가 터져서 다 우글우글하게 달라붙어서 펼쳐본 적이 없고 공책은 가끔 기분 내키면 한쪽씩 썼는데 한권의 공책이 오늘은 국어노트고 다음장은 가정 노트고 뭐 그랬다. -_-; 그냥 버티면 날마다 그걸로 뭐라하면 진도를 못 나가니까 그냥 쟤는 자는구나_ 쟤는 필기를 안하는구나_ 하는 법이지만 나중에 수행평가가 도입됐을 때는 진짜 한 번 선생하고 입씨름할 게 수십배로 늘었는데 문제집 참고서 놔두고 지도서 그대로 복사해서 분필가루 교실에 뿌리는 것도 이해가 안 됐고 공책검사 따위 -_-; 문구회사와 학교앞 문구점의 로비라던가 선생들의 가학성향이라고 밖에 할 수 없었다. 압권은 그거였다. 태도 평가 3점 만점에 1점이라도 달라고 -_-; 그러면 대회 가산점으로 100점 된다고 했더니 (내 아버지가 좀 특이해서 총점 1점에 한대씩 때렸다. 체육 팔십몇점 맞으면 열몇대+딴 과목에서 몇대씩+ 거기다가 자세유지를 해야했다 =_=;;; 지금 정글고 만화에서 맞는 건 아프기야 하겠지만 별로 힘들어보이지 않는다; 더 웃긴건 남의 집에서도 그렇게 때린다고 어머니가 말해서 그렇게 한번에 몇십대씩 때리지는 않아도 딴 애들도 일주일에 세번정도 한번에 몇시간씩 부모가 들들 때려서 밤에 잠도 못자고 새벽 내내 아파서 우는 줄 알고 학교에서 뛰댕기는 애들보고 쟤들은 기운도 좋아-라고 십년정도 착각하고 있었다는 거다. =_=;; 난 집나오고 몇년 지날때까지 걸을 때 통증 안 느껴지는 경험을 못 했다. 집 나오고 1년쯤 되서 교통사고를 당해서 -_-;) 그러겠다고 했던 교사가 나중에 형평성때문에 넌 빵점 -_- 했을 때 빈교실에서 티격태격했던 거 같다. 진짜 자다 일어나서 교사하고 말해야할 상황이 늘어서 수행평가 싫었다. 그냥 중간고사 기말고사 같은 건 아버지에 대한 예의상 -_-;(어머니는 동생 기죽인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셨기 때문에- 자주 그런 이유로 굶기기도 하셨다. 아침에 내가 다른 가족보다 먼저 일어나면 절대 밥 안 차려주셨다. 집에 나 혼자 있을 때도 마찬가지고. 차라리 어머니가 나가시면 혼자 밥을 찾아 먹을 수 있었다. 중학교 들어간 이후에는 저녁 한끼만 먹고 산 날이 그렇지 않은 날보다 많았다.) 시험 당일이나 전날 밤에 애들한테 공책 빌려서 한번 읽고 치면 되는 거고 도학력 평가 모의고사 같은 건 중간 기말때의 기억을 살려서 종치고 오분에서 십분안에 후닥 찍고 잤다. 중간기말때는 애들이 어수선하고 수업시간이 짧아서 좀 덜 좋았고 정말 좋은 건 도시학력평가 날이었다. 선생들이 떠들지도 않고 시간 하나하나도 자기 좋게 긴데다가 국영 같은 경우는 듣기평가하는 중간중간에 다른 문제 다 풀고 엎드려 듣기 평가 듣다가 듣기 평가 풀고 주욱 자기도 했으니까. 아버지를 사람으로 보지 않았는데(길가다가 스쳐도 얼굴을 구분못했다. 그리고 모르고 지나갔다는 이유로 또 맞았다.) 때리는 건 널 위해서고(맞는게 나한테 도움이 된다고는 생각 안했지만 아버지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고) 니가 성적을 달리 받아오면 안 때릴 거라는 아버지 말을 믿기는 했다. (이상한데 어린애니까) 그래서 이렇게 저렇게 바꿔봤는데 아버지가 때리는 정도가 달라지지 않아서- 원래 몇달에 한번 정도 아버지가 아침에도 때렸는데 마침 그날이 시학력이었나 그랬던 때에 -_-; 갔다 와서 얘기했더니 몰랐으면서 넌 원래 맞고 가면 잘 치잖아 일부러 때린 거야-_-; 라고 말했을 때 전에 한번도 시험 당일 아침에 맞은 적이 없는데 처음으로 거짓말 아닌가 그냥 때리고 싶어서 때리는 게 아닌지 의심했던 기억이 있다. 그뒤로는 참 힘들었다. 몸이 아니라.
하여간에 70% 시험 30% 중간평가 태도점수 뭐 이런 체제인 수행평가가 처음 도입 됐었는데 (지금은 퍼센트는 어떤지 모르겠는데 애들이 제발 수행평가 가짓수 좀 줄여줬으면 좋겠다고 중학교 때 했던 거 고등학교 때 또한다고 화내고 2는 내가 설문받을 때도 한지 찢어서 말아서 붙히는 작업중이었던 걸 보면 힘든가보다. 걔들은 심지어 수행평가가 없는 걸 상상을 못한다. ^^; 교사들은 작업량때문에 미치려고 한다. 이명박 정부가 촌지지침까지 없앤 지금 촌지 받기엔 참 좋은 거 같지만 그런 얘기 하는 사람이 없으니 모르지;) 계속 피곤하니까 제출할 거 못하고 선생하고 싸우고 뭐 점수가 깎이니까 엄마는 역시 좋아하고 ^^; 아버지는 변함없고 뭐 그랬던 기억이 난다. 사회에선 지리 시간이 가장 싫었다. 난 버스비가 없어서 학교 도서관 책은 자습시간에 한도까지 대출해서 수업시간에 읽고 점심시간에 반납해서 대출하고 수업시간에 읽고 방과후에 반납하는 식으로 2학년때 다 읽었는데 딴 도시는 고사하고 도서관도 못 가고 (진짜 웃긴 건데 세뱃돈조차 아버지가 무슨 전집(조그만 올컬러 외국 그거 뭐더라) 보고 싶니? 네 니가 반내라 네 (책오고 나서 안방에 가져다놓고) 내 허락받은 날만 한권씩 읽어 읽고 감상문 써 라던가-맞는 거 아픈 거 말고 딴생각 하려고 책 읽는 건데 감상문을 써서 보여줄리가 없지-100점 못 받은 과목당 5천원씩 이라는 식으로 가져갔다;) 딴 도시 이름 보는게 너무 짜증났다. 중학교 내내 학원도 안 가고 학교-집-학교-집이었다.
뭐 그런 생활을 하면서 왜 학교를 나간 사람들이 학교를 개선할 생각을 안 하는 거냐고 인간도 아니라고 짜증냈었는데 나도 몇년 동안 아무것도 못 했다.
+
며칠전에 얘기한 지금 평범한 학교에 갇힌 애들은 독특한 아버지가 없는 애들도 외국만을 생각한다. 대학이든 휴가든 장래든. (난 비행기가 싫어서 공항이 지겨워서 외국은 생각도 한 적 없어서 신기했다. 난 한국도 못 봤고 한국 유적이 예쁘고 물과 과일과 음식이 맛있고. 그런데 애들은 내가 작년부터 부모를 지긋지긋하게 생각하는 것처럼-작년까지는 수신제가를 해야한다고 생각했다-한국이 지긋지긋한가보다.) 그런데 그럼 과외비나 지금 고생하는 게 아깝지 않냐고 여기 대학을 갈 거 아니면 왜 그러고 있냐고 그래도 답을 하지 못하고 나랑 이야기한 다음 날도 7시 전에 일어나 머리 빗는 시간 아깝다는 아버지 몰래 머리를 빗고 밤 12시 넘어 학교를 나올, 학원에 들러 3-4시에 잠들 애들이다. 학원 담합 27만원에 화내고 어떤 스파르타 학원의 수백 학원비에 화내다가 서로의 동생들 종합(학원)비를 걱정해주는 애들이다. 집에 빚-네 동생도 종합 끊어야 될 때 됐지? 걱정이야.
+
며칠전에 또 이명박 정부가 학원 시간을 느슨하게 했다. 학원 갈 자유를 외치며 24시간 학원제 전격적으로 내놓았다가 욕먹고 슬그머니 미뤄뒀다가 다시 조금씩 애들을 피곤하게 하고 학부모의 돈을 경쟁적으로 더 갖다바치게 하고 병들게 하고 장래의 병원손님들을 늘인다.(청소년들의 근시와 척추측만뿐 아니라 심각한 발의 기형도 80%다. 내장으로 가자면;) 지금 포털 메인뉴스가 운하랑 공기업 사유화는 천천히 하겠다는 거다. -_-; 국회 개원 안 했으면 좋겠다.
+
대안교육 책 중 마음에 드는 건 교실의 고백과 핸드메이드 라이프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블로그도 문장으로 설득할 생각 전혀 없고 그냥 기사만 봐서, 아 운하 파겠다 그러는 사람은 모래랑 세금이랑 국토 이용권이랑 수질 안전이랑 다 건설회사에 헐값으로 팔아넘기려는 매국노고 금치산자 판정내려야겠구나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었으면 했고 공기업 민영화도 그렇고 내가 퍼올리는 게 좀 귀찮지만 빗방울 하나라고 생각했다. 표면장력으로 버티고 있는 물잔이 넘칠 수 있는 물방울.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 집에 가기 싫어서 수업 마치면 교무실에서 열쇠 챙겨 빈교실 아무데나 들어가 사물함 앞에 깔아놓는 퍼즐모양 스펀지 방석에 앉아 해가 질때까지 학급문고 책들을 읽곤 했다. 불을 켜면 복도나 건물 밖에서 누가 볼 수 있으니까. 중학생때는 피부에 들러붙는 여름에 땀나고 덥고 겨울에 추운 데다가 미끌거리면서도 까끌까끌한 신비한 합성섬유로 만든 교복을 입고 저녁까지 엎드려 있으면서 가끔 시비거는 선생들(자기들 기분 나쁠 때 말고는 깨우는 선생들이 적었다.) 있으면 고개 들어 주고 교과서는 안 먹고 가방에 넣어둔 우유가 터져서 다 우글우글하게 달라붙어서 펼쳐본 적이 없고 공책은 가끔 기분 내키면 한쪽씩 썼는데 한권의 공책이 오늘은 국어노트고 다음장은 가정 노트고 뭐 그랬다. -_-; 그냥 버티면 날마다 그걸로 뭐라하면 진도를 못 나가니까 그냥 쟤는 자는구나_ 쟤는 필기를 안하는구나_ 하는 법이지만 나중에 수행평가가 도입됐을 때는 진짜 한 번 선생하고 입씨름할 게 수십배로 늘었는데 문제집 참고서 놔두고 지도서 그대로 복사해서 분필가루 교실에 뿌리는 것도 이해가 안 됐고 공책검사 따위 -_-; 문구회사와 학교앞 문구점의 로비라던가 선생들의 가학성향이라고 밖에 할 수 없었다. 압권은 그거였다. 태도 평가 3점 만점에 1점이라도 달라고 -_-; 그러면 대회 가산점으로 100점 된다고 했더니 (내 아버지가 좀 특이해서 총점 1점에 한대씩 때렸다. 체육 팔십몇점 맞으면 열몇대+딴 과목에서 몇대씩+ 거기다가 자세유지를 해야했다 =_=;;; 지금 정글고 만화에서 맞는 건 아프기야 하겠지만 별로 힘들어보이지 않는다; 더 웃긴건 남의 집에서도 그렇게 때린다고 어머니가 말해서 그렇게 한번에 몇십대씩 때리지는 않아도 딴 애들도 일주일에 세번정도 한번에 몇시간씩 부모가 들들 때려서 밤에 잠도 못자고 새벽 내내 아파서 우는 줄 알고 학교에서 뛰댕기는 애들보고 쟤들은 기운도 좋아-라고 십년정도 착각하고 있었다는 거다. =_=;; 난 집나오고 몇년 지날때까지 걸을 때 통증 안 느껴지는 경험을 못 했다. 집 나오고 1년쯤 되서 교통사고를 당해서 -_-;) 그러겠다고 했던 교사가 나중에 형평성때문에 넌 빵점 -_- 했을 때 빈교실에서 티격태격했던 거 같다. 진짜 자다 일어나서 교사하고 말해야할 상황이 늘어서 수행평가 싫었다. 그냥 중간고사 기말고사 같은 건 아버지에 대한 예의상 -_-;(어머니는 동생 기죽인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셨기 때문에- 자주 그런 이유로 굶기기도 하셨다. 아침에 내가 다른 가족보다 먼저 일어나면 절대 밥 안 차려주셨다. 집에 나 혼자 있을 때도 마찬가지고. 차라리 어머니가 나가시면 혼자 밥을 찾아 먹을 수 있었다. 중학교 들어간 이후에는 저녁 한끼만 먹고 산 날이 그렇지 않은 날보다 많았다.) 시험 당일이나 전날 밤에 애들한테 공책 빌려서 한번 읽고 치면 되는 거고 도학력 평가 모의고사 같은 건 중간 기말때의 기억을 살려서 종치고 오분에서 십분안에 후닥 찍고 잤다. 중간기말때는 애들이 어수선하고 수업시간이 짧아서 좀 덜 좋았고 정말 좋은 건 도시학력평가 날이었다. 선생들이 떠들지도 않고 시간 하나하나도 자기 좋게 긴데다가 국영 같은 경우는 듣기평가하는 중간중간에 다른 문제 다 풀고 엎드려 듣기 평가 듣다가 듣기 평가 풀고 주욱 자기도 했으니까. 아버지를 사람으로 보지 않았는데(길가다가 스쳐도 얼굴을 구분못했다. 그리고 모르고 지나갔다는 이유로 또 맞았다.) 때리는 건 널 위해서고(맞는게 나한테 도움이 된다고는 생각 안했지만 아버지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고) 니가 성적을 달리 받아오면 안 때릴 거라는 아버지 말을 믿기는 했다. (이상한데 어린애니까) 그래서 이렇게 저렇게 바꿔봤는데 아버지가 때리는 정도가 달라지지 않아서- 원래 몇달에 한번 정도 아버지가 아침에도 때렸는데 마침 그날이 시학력이었나 그랬던 때에 -_-; 갔다 와서 얘기했더니 몰랐으면서 넌 원래 맞고 가면 잘 치잖아 일부러 때린 거야-_-; 라고 말했을 때 전에 한번도 시험 당일 아침에 맞은 적이 없는데 처음으로 거짓말 아닌가 그냥 때리고 싶어서 때리는 게 아닌지 의심했던 기억이 있다. 그뒤로는 참 힘들었다. 몸이 아니라.
하여간에 70% 시험 30% 중간평가 태도점수 뭐 이런 체제인 수행평가가 처음 도입 됐었는데 (지금은 퍼센트는 어떤지 모르겠는데 애들이 제발 수행평가 가짓수 좀 줄여줬으면 좋겠다고 중학교 때 했던 거 고등학교 때 또한다고 화내고 2는 내가 설문받을 때도 한지 찢어서 말아서 붙히는 작업중이었던 걸 보면 힘든가보다. 걔들은 심지어 수행평가가 없는 걸 상상을 못한다. ^^; 교사들은 작업량때문에 미치려고 한다. 이명박 정부가 촌지지침까지 없앤 지금 촌지 받기엔 참 좋은 거 같지만 그런 얘기 하는 사람이 없으니 모르지;) 계속 피곤하니까 제출할 거 못하고 선생하고 싸우고 뭐 점수가 깎이니까 엄마는 역시 좋아하고 ^^; 아버지는 변함없고 뭐 그랬던 기억이 난다. 사회에선 지리 시간이 가장 싫었다. 난 버스비가 없어서 학교 도서관 책은 자습시간에 한도까지 대출해서 수업시간에 읽고 점심시간에 반납해서 대출하고 수업시간에 읽고 방과후에 반납하는 식으로 2학년때 다 읽었는데 딴 도시는 고사하고 도서관도 못 가고 (진짜 웃긴 건데 세뱃돈조차 아버지가 무슨 전집(조그만 올컬러 외국 그거 뭐더라) 보고 싶니? 네 니가 반내라 네 (책오고 나서 안방에 가져다놓고) 내 허락받은 날만 한권씩 읽어 읽고 감상문 써 라던가-맞는 거 아픈 거 말고 딴생각 하려고 책 읽는 건데 감상문을 써서 보여줄리가 없지-100점 못 받은 과목당 5천원씩 이라는 식으로 가져갔다;) 딴 도시 이름 보는게 너무 짜증났다. 중학교 내내 학원도 안 가고 학교-집-학교-집이었다.
뭐 그런 생활을 하면서 왜 학교를 나간 사람들이 학교를 개선할 생각을 안 하는 거냐고 인간도 아니라고 짜증냈었는데 나도 몇년 동안 아무것도 못 했다.
+
며칠전에 얘기한 지금 평범한 학교에 갇힌 애들은 독특한 아버지가 없는 애들도 외국만을 생각한다. 대학이든 휴가든 장래든. (난 비행기가 싫어서 공항이 지겨워서 외국은 생각도 한 적 없어서 신기했다. 난 한국도 못 봤고 한국 유적이 예쁘고 물과 과일과 음식이 맛있고. 그런데 애들은 내가 작년부터 부모를 지긋지긋하게 생각하는 것처럼-작년까지는 수신제가를 해야한다고 생각했다-한국이 지긋지긋한가보다.) 그런데 그럼 과외비나 지금 고생하는 게 아깝지 않냐고 여기 대학을 갈 거 아니면 왜 그러고 있냐고 그래도 답을 하지 못하고 나랑 이야기한 다음 날도 7시 전에 일어나 머리 빗는 시간 아깝다는 아버지 몰래 머리를 빗고 밤 12시 넘어 학교를 나올, 학원에 들러 3-4시에 잠들 애들이다. 학원 담합 27만원에 화내고 어떤 스파르타 학원의 수백 학원비에 화내다가 서로의 동생들 종합(학원)비를 걱정해주는 애들이다. 집에 빚-네 동생도 종합 끊어야 될 때 됐지? 걱정이야.
+
며칠전에 또 이명박 정부가 학원 시간을 느슨하게 했다. 학원 갈 자유를 외치며 24시간 학원제 전격적으로 내놓았다가 욕먹고 슬그머니 미뤄뒀다가 다시 조금씩 애들을 피곤하게 하고 학부모의 돈을 경쟁적으로 더 갖다바치게 하고 병들게 하고 장래의 병원손님들을 늘인다.(청소년들의 근시와 척추측만뿐 아니라 심각한 발의 기형도 80%다. 내장으로 가자면;) 지금 포털 메인뉴스가 운하랑 공기업 사유화는 천천히 하겠다는 거다. -_-; 국회 개원 안 했으면 좋겠다.
+
대안교육 책 중 마음에 드는 건 교실의 고백과 핸드메이드 라이프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 by | 2008/06/11 20:05 | 많은비 | 트랙백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