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1월 04일
그렇게 생각한다는 게 바로 낙관적이라는 증거겠지요.
문국현│ 예, 뭐 낙관적이니까 회사 내에서 24년 전에 이미 반부패 운동도 시작하고 숲 운동도 시작할 수 있었어요. 숲 운동은 처음 10년간 힘들었지요. 1994년에 가서야 정부가 손비로 인정해주기 시작했거든요. 처음에는 나라 땅에 왜 회사가 나무를 심느냐, 나무를 심을 테면 땅을 사서 심으라고 했어요. 하는 수 없이 세금을 40퍼센트나 내면서 나무 심기를 계속했죠. 이 운동을 24년째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지구력도 지구력이지만 낭만적 기질 덕분이라고 봐요.
질문│ 사장님의 낙관적 견해는 태생적인 건가요 아니면 학습된 건가요?
문국현│ 둘 다일 겁니다. 경영학의 첫 번째 원리는 빌드더 스트렝스Build the Strength, 곧 장점 키우기거든요. 장점을 많이 활용해서 더 키우라고 하죠. 그 대표적인 분이 피터 드러커입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긍정적이었어요. 어려서부터 창조하고 디자인하는 것을 좋아했고요. 꿈이 있고, 그것을 채울 수 있는 전문성이 있고, 긍정적 사고와 지구력을 가지고 포기하지 않으면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질문│ 사람이 어떤 일을 할 때는 대부분 계기가 있지요? 기업에 몸담고 있으면서 일견 기업과는 상관이 없어 보이는 나무 심기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는지요? 시민운동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또 무엇이었습니까?
문국현│ 저에게 형님이 두 분이 계신데 어렸을 때부터 산을 좋아해 함께 숲에 갈 기회가 많았습니다. 유년시절을 온통 산에서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전국 곳곳의 산을 다 누비고 다녔어요. 그래서 도시에서 태어났지만 누구보다 산을 좋아했고, 숲을 가까이 하게 되었지요. 그러다보니 자연이 얼마나 사람을 평화롭고 행복하게 하는지 남보다 일찍 깨달았어요. 그러다가 1983년 안식년을 이용해 해외연수를 갔는데 이때 한국에는 먼 산에만 있던 숲이 외국은 도시 곳곳에 펼쳐져 있는 걸 보고 감탄했어요. 귀국 후 회사 업무가 취미인지 나무 심기가 취미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로 숲 가꾸기에 열정을 쏟게 되었죠. 그 당시 우리나라에 나무를 심고 가꾸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거든요. 그래서 회사를 설득해‘우리 강산 푸르게 푸르게’캠페인 을 시작했는데, 숲이 늘어나는 만큼 행복도 늘어나더군요. 일과 취미를 결합할 수 있는 곳이라는 점에서 유한킴벌리는 저에게 정말 멋있는 회사였습니다.
질문│ 직장인들이 가장 바라는 바를 이룬 셈이시군 요. 대부분의 월급쟁이들에게 조직의 발전과 개인의 발전이 반드시 일치하지 않거든요. 종종 조직은 잘 되면서도 개인은 발전의 기회를 얻지 못해 불만으로 작용하기도 하지요.
문국현│ 그런 점에서 저는 행운아예요. 나무 심기를 하다가 더욱 뜻 깊은 경험도 하게 되었어요. 지난 1997년의 IMF 외환위기 때, 경제적 위기에서 한편에서는 일자리를 창출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숲 보호 활동을 강화할 수 있도록 각계 사회 지도 자들을 모시고 더 본격적인 시민운동을 주도하게 되었거든요.
당시 시작한‘생명의 숲 국민운동’이 이미 우리 사회 모두가 흐뭇 해할 만한 세계적 숲운동으로 자리잡았습니다. ‘학교 숲 운동’은 정부와 기업, 지방자치단체에서 추가로 시행하는 학교들까지 합치면 그 규모가 매우 큽니다. 학교숲 이외에도 전국의 많은 도시에서 도시숲과 소규모 마을숲이 급속히 늘어나고 있는 것은 정말 아름다운 발전이자 우리 사회의 희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생명의 숲 국민운동이 이미 우리 사회 모두가
흐뭇해할 만한 세계적 숲운동으로 자리잡았습니다.
학교숲 이외에도 전국의 많은 도시에서
도시숲과 소규모 마을숲이 급속히
늘어나고 있는 것은 정말 아름다운 발전이자
우리 사회의 희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질문│ 반부패 운동도 기업인으로서는 참여하기가 쉽지 않지요? 우리 사회에서 기업인은 부패의 원조처럼 의심받는 실정인데요. 어떻게 그런 운동이 가능하지요?
문국현│ 물론 처음에는 반부패 운동이 쉽지 않았어요.
요즘도 반부패 운동 하는 사람을 세상이 별로 좋아하지 않잖아요.
유엔이 주도하는 글로벌 콤팩트Global Compact에서 기업의 반부패 운 동이 기본적인 요건입니다. 그런데도 한국에서는 아직도 반부패 운동을 한다면 너무 진보적인 사람이 아니냐 그래요. 사실은 진보 적인 것이 아니라, 기본인데도. 반부패 운동을 하면서 불필요한 오해도 종종 받아요. 하지만 저는 다보스 포럼도 열심히 가고 유엔과도 열심히 협력하면서 글로벌 콤팩트 서약을 계속 추진하고 있어요. 남들이 욕한다고 안 하면 세상의 발전이 없으니까요. 또 우리나라 경제인들이 왜 아직도 유엔이 권장하는 기업 강령인 글로벌 콤팩트에 무관심한지 안타까운 생각이 많이 들어요. 이걸 무시하다가는 미구에 우리 기업들이 곤경에 처하게 될 게 뻔해요. 경쟁국인 중국과 인도의 기업들은 흔히 말하는 개발도상국인 데도 불구하고, 우리보다 세 배, 네 배 나 많이 서명하여 우리를 훨씬 앞서가고 있는데 말이죠.
처음에는 반부패 운동이 쉽지 않았어요.
한국에서는 아직도 반부패 운동을 한다면
너무 진보적인 사람이 아니냐, 그래요.
사실은 진보적인 것이 아니라, 기본인데도.
반부패 운동을 하면서 불필요한 오해도
종종 받아요. 하지만 남들이 욕한다고 안 하면
세상의 발전이 없습니다.
질문│ 제가 몇 년간 한국외국어대학에서 경영학을 강 의한 적이 있어요. 중간고사 때마다 시험 대신 학생들에게 리포트를 쓰게 했어요. 주제는 유일한, 이병철, 정주영 세 기업인 중 한 분을 골라 평하라는 것이었지요. 그때 보니까 유일한 박사님을 대상으로 선정한 학생들은 대부분 감동 일색이었어요. 좀 극적으로 표현하자면 뭐랄까, 마치 고압선에 감전된 것 같은 반응을 보이거든요.
학생들은 첫째 이승만 정부 시절 상공부장관 입각 제의를 받고도 이를 뿌리치고 기업인의 외길을 갔다는 사실, 두 번째는 전문경영 인 제도를 이 땅에 도입한 사실, 세 번째는 사유재산의 사회 환원 등을 훌륭한 점으로 꼽아요. 리포트의 결론 부분에 가면 이구동성으로 자신들도 할 수만 있으면 유일한 박사와 같은 훌륭한 기업인이 되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거든요. 아마 지금 다른 대학에 가서 같은 과제를 줘도 비슷한 의견이 나올 거라 생각해요. 사장님은 유 박사님의 어떤 점을 훌륭하게 치시나요?
문국현│ 우선 그분은 애국애족의 화신이에요. 우리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인데, 유 박사님의 일생을 종합해보았을 때 그 분은 남을 위해서 태어나셨어요. 나중에 종업원 지주제나 전문경영인 제도에서도 그런 본성이 나타났어요. 그러나 가장 놀라운 일은 그분이 보통 사람은 도저히 흉내도 낼 수 없게 전 재산을 사회에 기증하시거든요. 그분은 아홉 살에 미국에 가서 고등학교와 대학을 나오고 독립운동도 하면서 백만장자까지 됐는데 확고한 애 족애국의 마음이 없었다면 자기의 모든 것을 한국 사회에 던지지 못했을 거라고 봅니다. 두 번째로 제가 그분한테서 느끼는 것은‘인테그리티의 상징’이에요. 유일한 박사님이 사업을 위해 귀국을 결심하자 서재필 박사님이 처음에는 미국에 있지 왜 위험한 한국으로 가느냐고 만류했어요. 그러면서도 박사님의 뜻이 확고한 것을 알고는 유한의 버들표 로고를 만들어줍니다. 거기다 영어로 인테그리티 Integrity라는 단어를 썼는데 우리말로는‘신용’이라고 번역했지요.
유 박사님은 진정 신뢰와 신용의 화신이었어요. 그렇기에 유 박사님이 돌아가신지 36년이 되어도 많은 사람들이 그분을 아직도 기억해주고 최근에는 그분의 이름을 딴‘유일한로’라는 길도 생 기고 그곳에‘신뢰의 문’도 세울 수 있었겠지요.
유 박사님은 제가 대학 4학년 때 전 재산을 사회에 기증하셨어요.
당시의 50억 원이면 지금의 5500억 내지 1조 원의 가치가 있는 재산인데 그 큰 재산을 자녀들이나 아내한테 주지 않고 재단에 기증하는 것을 보면서 굉장한 감동을 느꼈어요. 종교인도 아닌데 이타적인 삶을 살았거든요. 저한테는 영원한 등대지요.
유일한 박사님은 제가 대학 4학년 때
전 재산을 사회에 기증하셨어요.
그걸 보면서 굉장한 감동을 느꼈어요.
좋은 생각은 비록 한 사람에서 출발하더라도
다음 사람들에 의해 계승되고 확장되면서
결국 엄청나게 커지게 마련이에요.
질문│ 문 사장님도 애국애족을 많이 생각하시나요?
문국현│ 뭐 애국애족이라는 말보다 요즘은 남의 꿈을 생각할 수 있고 남의 행복을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되자고 다짐을 많이 합니다. 그리고 개인이든 기업이든 신뢰가 가장 큰 경쟁력이고 성공의 비결이라고 많은 분들한테 전파하는 전도사가 돼 가고 있어요. 그렇게 사니까 아주 자유스러워요. 어떤 악재나 위협도 무섭지 않고 완벽한 자유를 느껴요. 그런 자유 속에서 무한
한 창조력과 통합적 힘이 나오고, 모든 인생사와 기업 활동에서 불신이 사라지니까 파워가 커집니다. 그래서 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저는 두려움이 전혀 없어요.
질문│ 유 박사님 같은 분은 하늘이 내시나요, 아니면 본인이 노력해서 그렇게 되시나요? 그 시대가 참 암울하고 힘든 때였는데.
문국현│ 어려서 유학 간 것 자체가 남다른 자극이었을 것 같고 태생적으로 성숙했던 것 같아요. 그분이 공부하던 1920년 대 당시의 미국은 현대 경영학이 탄생하던 시기라서 아마 미국에서 경영학을 공부하면서 생각이 훨씬 앞서게 되었던 게 아닐까요.
한국에 오셔서 이미 1930년대에 종업원 지주제나 전문경영인 제도를 시작하셨거든요. 실제로 유한양행이 일제 말 핍박을 받던 시기가 있었는데 이 당시 유 박사님이 한국을 떠나 계셨어도 회사는 종업원이 주인이라서 아무런 문제가 없었어요.
질문│ 하루 세 끼 밥 먹고 사는 건 유 박사님이나 우리나 모두 똑 같은데 왜 인생의 가치에서는 그렇게 큰 차이가 나는지 모르겠어요.
문국현│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같은 생각을 가지면 우리도 할 수 있다고 봐요. 예수님도 그렇고 부처님도 그렇죠. 부 처님은 특히 부잣집에서 나서 모든 것을 버리시잖아요. 그래서 기독교는 예수 사후 2000년이, 그리고 불교는 석가모니 이후 2500년 지나도록 이렇게 계속 융성하는 거죠. 좋은 생각은 비록 한 사람에서 출발하더라도 다음 사람들에 의해 계승되고 확장되면서 결국 엄청나게 커지게 마련이에요.
남의 꿈을 생각할 수 있고
남의 행복을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되자고
다짐을 많이 합니다. 그리고
개인이든 기업이든
신뢰가 가장 큰 경쟁력이고
성공의 비결이라고 전파하는 전도사가
되어가고 있어요. 그렇게 사니까
어떤 악재나 위협도 무섭지 않고
완벽한 자유를 느껴요.
그래서 저는 두려움이 전혀 없어요.
질문│ 사장님의 낙관적 견해는 태생적인 건가요 아니면 학습된 건가요?
문국현│ 둘 다일 겁니다. 경영학의 첫 번째 원리는 빌드더 스트렝스Build the Strength, 곧 장점 키우기거든요. 장점을 많이 활용해서 더 키우라고 하죠. 그 대표적인 분이 피터 드러커입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긍정적이었어요. 어려서부터 창조하고 디자인하는 것을 좋아했고요. 꿈이 있고, 그것을 채울 수 있는 전문성이 있고, 긍정적 사고와 지구력을 가지고 포기하지 않으면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질문│ 사람이 어떤 일을 할 때는 대부분 계기가 있지요? 기업에 몸담고 있으면서 일견 기업과는 상관이 없어 보이는 나무 심기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는지요? 시민운동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또 무엇이었습니까?
문국현│ 저에게 형님이 두 분이 계신데 어렸을 때부터 산을 좋아해 함께 숲에 갈 기회가 많았습니다. 유년시절을 온통 산에서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전국 곳곳의 산을 다 누비고 다녔어요. 그래서 도시에서 태어났지만 누구보다 산을 좋아했고, 숲을 가까이 하게 되었지요. 그러다보니 자연이 얼마나 사람을 평화롭고 행복하게 하는지 남보다 일찍 깨달았어요. 그러다가 1983년 안식년을 이용해 해외연수를 갔는데 이때 한국에는 먼 산에만 있던 숲이 외국은 도시 곳곳에 펼쳐져 있는 걸 보고 감탄했어요. 귀국 후 회사 업무가 취미인지 나무 심기가 취미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로 숲 가꾸기에 열정을 쏟게 되었죠. 그 당시 우리나라에 나무를 심고 가꾸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거든요. 그래서 회사를 설득해‘우리 강산 푸르게 푸르게’캠페인 을 시작했는데, 숲이 늘어나는 만큼 행복도 늘어나더군요. 일과 취미를 결합할 수 있는 곳이라는 점에서 유한킴벌리는 저에게 정말 멋있는 회사였습니다.
질문│ 직장인들이 가장 바라는 바를 이룬 셈이시군 요. 대부분의 월급쟁이들에게 조직의 발전과 개인의 발전이 반드시 일치하지 않거든요. 종종 조직은 잘 되면서도 개인은 발전의 기회를 얻지 못해 불만으로 작용하기도 하지요.
문국현│ 그런 점에서 저는 행운아예요. 나무 심기를 하다가 더욱 뜻 깊은 경험도 하게 되었어요. 지난 1997년의 IMF 외환위기 때, 경제적 위기에서 한편에서는 일자리를 창출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숲 보호 활동을 강화할 수 있도록 각계 사회 지도 자들을 모시고 더 본격적인 시민운동을 주도하게 되었거든요.
당시 시작한‘생명의 숲 국민운동’이 이미 우리 사회 모두가 흐뭇 해할 만한 세계적 숲운동으로 자리잡았습니다. ‘학교 숲 운동’은 정부와 기업, 지방자치단체에서 추가로 시행하는 학교들까지 합치면 그 규모가 매우 큽니다. 학교숲 이외에도 전국의 많은 도시에서 도시숲과 소규모 마을숲이 급속히 늘어나고 있는 것은 정말 아름다운 발전이자 우리 사회의 희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생명의 숲 국민운동이 이미 우리 사회 모두가
흐뭇해할 만한 세계적 숲운동으로 자리잡았습니다.
학교숲 이외에도 전국의 많은 도시에서
도시숲과 소규모 마을숲이 급속히
늘어나고 있는 것은 정말 아름다운 발전이자
우리 사회의 희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질문│ 반부패 운동도 기업인으로서는 참여하기가 쉽지 않지요? 우리 사회에서 기업인은 부패의 원조처럼 의심받는 실정인데요. 어떻게 그런 운동이 가능하지요?
문국현│ 물론 처음에는 반부패 운동이 쉽지 않았어요.
요즘도 반부패 운동 하는 사람을 세상이 별로 좋아하지 않잖아요.
유엔이 주도하는 글로벌 콤팩트Global Compact에서 기업의 반부패 운 동이 기본적인 요건입니다. 그런데도 한국에서는 아직도 반부패 운동을 한다면 너무 진보적인 사람이 아니냐 그래요. 사실은 진보 적인 것이 아니라, 기본인데도. 반부패 운동을 하면서 불필요한 오해도 종종 받아요. 하지만 저는 다보스 포럼도 열심히 가고 유엔과도 열심히 협력하면서 글로벌 콤팩트 서약을 계속 추진하고 있어요. 남들이 욕한다고 안 하면 세상의 발전이 없으니까요. 또 우리나라 경제인들이 왜 아직도 유엔이 권장하는 기업 강령인 글로벌 콤팩트에 무관심한지 안타까운 생각이 많이 들어요. 이걸 무시하다가는 미구에 우리 기업들이 곤경에 처하게 될 게 뻔해요. 경쟁국인 중국과 인도의 기업들은 흔히 말하는 개발도상국인 데도 불구하고, 우리보다 세 배, 네 배 나 많이 서명하여 우리를 훨씬 앞서가고 있는데 말이죠.
처음에는 반부패 운동이 쉽지 않았어요.
한국에서는 아직도 반부패 운동을 한다면
너무 진보적인 사람이 아니냐, 그래요.
사실은 진보적인 것이 아니라, 기본인데도.
반부패 운동을 하면서 불필요한 오해도
종종 받아요. 하지만 남들이 욕한다고 안 하면
세상의 발전이 없습니다.
질문│ 제가 몇 년간 한국외국어대학에서 경영학을 강 의한 적이 있어요. 중간고사 때마다 시험 대신 학생들에게 리포트를 쓰게 했어요. 주제는 유일한, 이병철, 정주영 세 기업인 중 한 분을 골라 평하라는 것이었지요. 그때 보니까 유일한 박사님을 대상으로 선정한 학생들은 대부분 감동 일색이었어요. 좀 극적으로 표현하자면 뭐랄까, 마치 고압선에 감전된 것 같은 반응을 보이거든요.
학생들은 첫째 이승만 정부 시절 상공부장관 입각 제의를 받고도 이를 뿌리치고 기업인의 외길을 갔다는 사실, 두 번째는 전문경영 인 제도를 이 땅에 도입한 사실, 세 번째는 사유재산의 사회 환원 등을 훌륭한 점으로 꼽아요. 리포트의 결론 부분에 가면 이구동성으로 자신들도 할 수만 있으면 유일한 박사와 같은 훌륭한 기업인이 되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거든요. 아마 지금 다른 대학에 가서 같은 과제를 줘도 비슷한 의견이 나올 거라 생각해요. 사장님은 유 박사님의 어떤 점을 훌륭하게 치시나요?
문국현│ 우선 그분은 애국애족의 화신이에요. 우리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인데, 유 박사님의 일생을 종합해보았을 때 그 분은 남을 위해서 태어나셨어요. 나중에 종업원 지주제나 전문경영인 제도에서도 그런 본성이 나타났어요. 그러나 가장 놀라운 일은 그분이 보통 사람은 도저히 흉내도 낼 수 없게 전 재산을 사회에 기증하시거든요. 그분은 아홉 살에 미국에 가서 고등학교와 대학을 나오고 독립운동도 하면서 백만장자까지 됐는데 확고한 애 족애국의 마음이 없었다면 자기의 모든 것을 한국 사회에 던지지 못했을 거라고 봅니다. 두 번째로 제가 그분한테서 느끼는 것은‘인테그리티의 상징’이에요. 유일한 박사님이 사업을 위해 귀국을 결심하자 서재필 박사님이 처음에는 미국에 있지 왜 위험한 한국으로 가느냐고 만류했어요. 그러면서도 박사님의 뜻이 확고한 것을 알고는 유한의 버들표 로고를 만들어줍니다. 거기다 영어로 인테그리티 Integrity라는 단어를 썼는데 우리말로는‘신용’이라고 번역했지요.
유 박사님은 진정 신뢰와 신용의 화신이었어요. 그렇기에 유 박사님이 돌아가신지 36년이 되어도 많은 사람들이 그분을 아직도 기억해주고 최근에는 그분의 이름을 딴‘유일한로’라는 길도 생 기고 그곳에‘신뢰의 문’도 세울 수 있었겠지요.
유 박사님은 제가 대학 4학년 때 전 재산을 사회에 기증하셨어요.
당시의 50억 원이면 지금의 5500억 내지 1조 원의 가치가 있는 재산인데 그 큰 재산을 자녀들이나 아내한테 주지 않고 재단에 기증하는 것을 보면서 굉장한 감동을 느꼈어요. 종교인도 아닌데 이타적인 삶을 살았거든요. 저한테는 영원한 등대지요.
유일한 박사님은 제가 대학 4학년 때
전 재산을 사회에 기증하셨어요.
그걸 보면서 굉장한 감동을 느꼈어요.
좋은 생각은 비록 한 사람에서 출발하더라도
다음 사람들에 의해 계승되고 확장되면서
결국 엄청나게 커지게 마련이에요.
질문│ 문 사장님도 애국애족을 많이 생각하시나요?
문국현│ 뭐 애국애족이라는 말보다 요즘은 남의 꿈을 생각할 수 있고 남의 행복을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되자고 다짐을 많이 합니다. 그리고 개인이든 기업이든 신뢰가 가장 큰 경쟁력이고 성공의 비결이라고 많은 분들한테 전파하는 전도사가 돼 가고 있어요. 그렇게 사니까 아주 자유스러워요. 어떤 악재나 위협도 무섭지 않고 완벽한 자유를 느껴요. 그런 자유 속에서 무한
한 창조력과 통합적 힘이 나오고, 모든 인생사와 기업 활동에서 불신이 사라지니까 파워가 커집니다. 그래서 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저는 두려움이 전혀 없어요.
질문│ 유 박사님 같은 분은 하늘이 내시나요, 아니면 본인이 노력해서 그렇게 되시나요? 그 시대가 참 암울하고 힘든 때였는데.
문국현│ 어려서 유학 간 것 자체가 남다른 자극이었을 것 같고 태생적으로 성숙했던 것 같아요. 그분이 공부하던 1920년 대 당시의 미국은 현대 경영학이 탄생하던 시기라서 아마 미국에서 경영학을 공부하면서 생각이 훨씬 앞서게 되었던 게 아닐까요.
한국에 오셔서 이미 1930년대에 종업원 지주제나 전문경영인 제도를 시작하셨거든요. 실제로 유한양행이 일제 말 핍박을 받던 시기가 있었는데 이 당시 유 박사님이 한국을 떠나 계셨어도 회사는 종업원이 주인이라서 아무런 문제가 없었어요.
질문│ 하루 세 끼 밥 먹고 사는 건 유 박사님이나 우리나 모두 똑 같은데 왜 인생의 가치에서는 그렇게 큰 차이가 나는지 모르겠어요.
문국현│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같은 생각을 가지면 우리도 할 수 있다고 봐요. 예수님도 그렇고 부처님도 그렇죠. 부 처님은 특히 부잣집에서 나서 모든 것을 버리시잖아요. 그래서 기독교는 예수 사후 2000년이, 그리고 불교는 석가모니 이후 2500년 지나도록 이렇게 계속 융성하는 거죠. 좋은 생각은 비록 한 사람에서 출발하더라도 다음 사람들에 의해 계승되고 확장되면서 결국 엄청나게 커지게 마련이에요.
남의 꿈을 생각할 수 있고
남의 행복을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되자고
다짐을 많이 합니다. 그리고
개인이든 기업이든
신뢰가 가장 큰 경쟁력이고
성공의 비결이라고 전파하는 전도사가
되어가고 있어요. 그렇게 사니까
어떤 악재나 위협도 무섭지 않고
완벽한 자유를 느껴요.
그래서 저는 두려움이 전혀 없어요.
# by | 2008/01/04 16:47 | 창조한국 문국현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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